발칸여행 (12)

2008년 4월 1일

독일의 베르히테스가덴



독일 (Germany)
독일연방공화국(獨逸聯邦共和國, 독일어: Bundesrepublik Deutschland, 문화어: 도이췰란드)은 중앙유럽의 나라이다.
북쪽으로 덴마크와 북해, 발트 해, 동쪽으로 폴란드와 체코, 남쪽으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서쪽으로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와 접한다.


독일의 지도


독일은 16개 주로 이뤄진 연방 공화국이다.
역사적으로 여러 독립국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을 거치면서 국민국가로 통합되었다.

독일 연방 공화국은 국제 연합과 NATO, G8의 가입국이며, 유럽 연합의 창설국이다.
유럽 연합에서 가장 인구가 많으며 경제력으로도 중심이 되는 나라이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한 후에도 독일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
명칭
독일을 가리키는 어휘는 유럽의 그 어느 나라보다 다양하며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독일어로는 도이칠란트(Deutschland)라고 하지만, 프랑스어로는 알레마뉴(Allemagne)라고 하며, 폴란드어로는 녬치(Niemcy)라고 한다.
한국어의 독일(獨逸)이란 명칭은 일본어로 도이츠로 발음되는 한자 獨逸(ドイツ)에서 온 것이다. 어원과 발음에서 원어와 차이가 많아 한때 교과서등에서 "도이칠란트"로 표기하기도 했으나 정착되지 않았다.
역사
국가로서 독일 역사의 시작은 프랑크 왕국이 3개의 국가로 갈려진 이후 부터 독립적인 역사로 다룬다.
물론, 독일이란 국명을 가진 단일 국가로 등장한 것은 1871년의 일이지만 역사학계에서는 843년 이후 동프랑크 왕국부터 국가로서 독일사로 다루고 있다. 그 이전 게르만 족 역사는 로마사의 일부로 다루기도 하고 유럽 고대사의 일부로 다루기도 한다.

900년 오토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서임받은 이후에도 독일 국경은 한 번도 고정된 적이 없다. 비록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제국을 이루었지만, 껍데기뿐인 제국이었고, 독일이란 국가 및 민족 정체성은 없었다.

독일은 도시 국가, 영주국, 주교령, 공국, 왕국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으며, 그 숫자는 몇 백개였다. 산 하나 넘으면 다른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북독일과 남독일의 지역 차이는 서로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북독일을 대표하는 나라가 프로이센이었고, 남독일을 대표하는 것이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였다). 따라서 뭉뚱그려서 "독일사"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독일사라고 할만한 것은 1871년 이후다.
대한민국에서는 프로이센 역사와 독일 역사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관심과 지식이 부족한 편이다.
여기에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역사도 포함되며, 현재 독일 내에서 각 주를 이루는 옛 공국들의 역사도 있다. 특히 후자의 부분들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난 30년 전쟁도 이런 상황을 더욱 고착시켰다.
특히 백년 전쟁 이후 절대주의 왕권 체제를 지향한 프랑스는 독일을 철저히 조각조각 쪼개 놓아야 한다는 정책을 세웠다. 이 정책은 19세기까지 거의 300여년 간 프랑스 외교 정책의 한 기둥이었다(프랑스가 이러한 정책을 추구한 것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갈리아와 게르만 관계의 기억도 한몫한 것이다).

18세기에 이르러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대등한 수준의 국가로 성장했다.
독일 기사단 영지에서 출발한 프로이센은 부국강병책과 군국주의 정책으로 군사 강국으로 성장했으며,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며 유럽의 주요 강국이 된다. 유명무실하긴 했지만, 신성로마제국 황제도 겸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는 프랑스에 대해서는 프로이센과 동맹하여 대항하지만, 독일 내에서는 프로이센과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관계가 되었다.

19세기에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독일 내에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통일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었다. 이 논쟁의 핵심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오스트리아를 배제하는 소독일주의와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대독일주의였다.
전자는 순수(하다고 믿어지는) 독일인이 주장하였고, 후자는 오스트리아의 입장이었다. 대독일주의에 대한 반발은 슬라브계가 대다수인 오스트리아를 포함시키면 민족적 순수성이 저해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스트리아 제국 전체를 놓고 보았을때 독일민족인 오스트리아인이 오히려 소수였던 것이다.

이 논쟁은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을 거쳐 완전히 결론이 났고, 이후 오스트리아는 독일 역사에서 제외된다.
이때는 북독일연맹에 남부 지역 독일계 공국들이 참여하는 수준이었으며, 정식으로 독일 제국은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승전 후에 성립되었다.

통일 독일 제국은 제국 수상 비스마르크의 지도로 타 열강들과 평화 공존 관계를 유지하면서 프랑스가 대외 정책을 추진했다. 물론 해외 식민지 쟁탈 경쟁에도 비스마크르의 강력한 입장때문에 추진하지 않았다.
그 정책은 영국, 프랑스 등과 불필요한 마찰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신 독일은 뒤늦은 산업혁명을 추진하면서 산업국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업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내부 모순 및 문제에 직면했으며, 이 내부 문제는 노동조합과 독일 사회민주당을 주축으로 한 사회주의 세력의 활발한 운동으로 표면화되었다. 그러나 제2제국의 더 큰 위기는 외부에서 찾아왔다.

비스마르크 사후 강해진 국력에 취하여 비스마르크가 피했던 식민지 쟁탈과 비스마르크의 외교 정책을 제대로 수행할 후임자를 갖지 못한 불행으로 독일은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제1차 세계 대전에 뛰어들었다.
이 전쟁에서 패한 독일은 군주제가 폐지되는 등의 홍역을 치뤘으며, 결국 가혹한 베르사이유 조약에 대한 복수심과 민족적 자긍심에 대한 상처때문에 나치 독일이 집권했고, 나치 독일의 총통이 된 아돌프 히틀러 는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패하여 전범국가가 된 독일은 옛 소련을 포함한 연합국의 점령에 따라 독일민주공화국과 독일연방공화국으로 분단되었다(따라서 두 나라의 역사는 각기 또 별도로 다루어진다).
두 나라는 각기 WTO와 NATO의 최전방 국가가 되었지만, 1970년대 초에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이 추진한 동방 정책에 동독이 호응함으로써 양국간 긴장 관계는 한반도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1973년에는 독일민주공화국사람들도 독일연방공화국의 텔레비전을 보는게 가능해졌으며, 분단시절에도 편지교환, 상호방문이 가능했다.
냉전 종식 후 1990년 10월 9일, 두 나라는 승전 4대국(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과 유럽연합의 승인을 받아 다시 통일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통일이후 고물가, 실업증가, 사회주의 환경에서 자라온 옛 동독사람들의 부적응문제, 서독 출판시장의 동독시장 접수등의 여러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
행정 구역
16개 주(Land. 정식 명칭은 연방주 Bundesland)로 구성되어 있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Baden-Wurttemberg)
바이에른 주 (Bayern)
베를린 (Berlin)
브란덴부르크 주 (Brandenburg)
브레멘 주 (Bremen)
함부르크 (Hamburg)
헤센 주 (Hessen)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Mecklenburg-Vorpommern)
니더작센 주 (Niedersachsen)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Nordrhein-Westfalen)
라인란트팔츠 주 (Rheinland-Pfalz)
자를란트 주 (Saarland)
작센 주 (Sachsen)
작센안할트 주 (Sachsen-Anhalt)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Schleswig-Holstein)
튀링겐 주 (Thuringen)
주민
주민의 대부분은 독일인이다. 소수 민족은 덴마크인, 소르브인, 터키인, 러시아인, 유고인, 화교, 쿠르드족, 기타가 거주하고 있다.
언어
공용어는 독일어이고, 소수 민족어나 러시아어, 영어, 소르브어, 덴마크어, 프리시아어도 사용된다.
종교
대부분이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를 믿고, 일부는 이슬람교, 유대교, 신흥 종교를 믿는다.
독일의 기독교는 전통적으로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로 30년전쟁의 영향으로 남부는 가톨릭, 북부는 개신교의 교세가 강하다.
최근에는 영국과 동유럽계 이민에 의해 성공회와 정교회가 들어옴에 따라 독일교회의 교파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인구통계
독일의 인구는 약 8200만 명을 넘는다.

여성 1인당 합계 출산율은 2004년 현재 (Eurostat 추정) 1.37 명이나, 동독지역의 합계출산율은 독일 평균보다 더 적다.
2005년 현재 천 명당 출산율은 8.4 명으로 유럽대륙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천 명당 사망률은 10.1 명이다. 독일 인구의 자연증가율은 만성적으로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교육
독일의 교육의 감독 책임은 기본적으로 각 주에 있으며 연방정부의 역할은 크지 않다.
만 3~6 세 사이의 어린이는 선택 과정인 유치원 교육을 받는다.
이후의 10년에서 13년의 교육은 의무적이다.
독일의 초등학교 다음 과정으론 하우프트슐레, 레알슐레, 김나지움 등이 있다.
먼저 하우프트슐레는 5년제인데 졸업을 하면 바고 직업전문학교로 가게된다.
레알슐레는 6년제인데 졸업 하면 직업전문학교을 갈 수도 있고 김나지움은 중둥 2단계로 바로 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김나지움은 9년제이고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다. 김나지움은 5-10학년은 중둥1단계, 11-13학년은 중등 2단계로 구분되어 있다.
김나지움 2단계까지 마치면 독일의 모든 대학을 갈 수 있는 아비투어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독일에선 초등학교를 4학년때 졸업을 할 수 있다. 어떤 초등학교는 6학년에 졸업을 하는 학교도 있다.
한국과의 관계
독일과 조선은 1883년 11월 26일 통상 조약을 체결하면서 외교관계를 맺었다가 한일합방으로 불가피하게 외교관계가 끊겼으나 1955년 12월 1일 재개되었다.
독일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북한과의 관계는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로 동독과의 외교관계가 끊겼으나, 2001년 3월 1일 재수교를 하였다.
위의 자료는 위키피디아에서 인용한 것임.
다음은 이번 여행을 주관한 주노여행사의 안내자료이다.
독일 개요
유럽대륙의 거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폴란드, 서쪽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프랑스, 벨기에, 남쪽은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북쪽은 발트해, 북해 및 덴마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국토는 남북한의 약 1. 6배인 35만 7천 41 평방km이다.
선조인 게르만 민족이 843년 동프랑크 왕국을 세움으로 국가로서의 역사를 갖기 시작했다.

중세기에 수많은 국가로 나누어져 있다가 1871년에 이르러서야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에 의하여 통일 제국이 성립되었으며 제 1차 세계대전에 패배하여 영토의 일부와 모든 해외 식민지를 잃고 제정을 폐지하여 공화국을 수립하였으나 경제적인 파탄에 직면하여 나치스당이 대두하였고 1933년 히틀러의 나치정부가 삼국동맹을 맺고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연합국에 패해 국토는 미, 영, 불, 소의 전승국들에 의하여 동서로 나뉘어 분할점령되었다.

1949년 미, 영, 불 점령 지역은 자본주의 국가인 독일 연방공화국(서독)으로 소련점령 지역은 공산체제인 독일 민주공화국(동독)으로의 분단국으로 전락되었으나 1990년 10월 3일 역사적인 동, 서독의 통합을 이룩하여 새로운 통일 독일이 탄생되었다.
통일 독일의 의회는 양원제로 16개 주정부(서독 11개주, 동독 5개주)에서 인구비례로 선출되는 연방 참의원과 비례 대표제로 선출되는 연방의회로 구성된다.
국기, 국가, 통화는 서독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며 수도는 베를린으로 결정했다.
향후 유럽의 최대 및 세계 제 3위의 막강한 힘을 가진 서독 경제는 동독을 계기로 더욱 확대, 가속적으로 발전될 전망이다.
자연과 기후
유럽의 나라들은 주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조금 춥다. 그러나 독일은 따뜻해서 여행하기에 좋은 나라이다.
계절의 구별도 확실해서 여름에는 건조하고 겨울에는 비교적 비가 많다. 그래서 여름에는 아무리 기온이 올라가도 건조해서 그늘에 들어서면 서늘할 정도이다.

여름에는 남부에 비해 저온이지만 겨울에는 해양의 영향을 받아 오히려 남부보다는 온화하고 기온도 0℃를 내려가는 일이다.
여름에 비해 일조시간이 매우 잛고, 흐린 날씨가 많다.
독일에 대해서 더 자세한 일반 정보를 원하면 나라 정보를 참조하라.



독일에서 우리가 방문했던 3 곳(베르히테스가덴, 뮌헨, Landshut)의 위치도


베르히테스가덴 (Berchtesgaden)

바이에른 알프스 산맥 속에 위치하며 삼면이 오스트리아의 영토에 에워싸여 있다. 동계 및 하계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12세기부터 소금이 채굴되어 왔다. 이 암염의 이권 때문에 잘츠부르크와 할라인(Hallein) 사이에는 여러 세기에 걸쳐 갈등과 대립이 이어지기도 하였다. 1300년부터는 1102년 설립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의 영지가 되었으며, 수도원장은 1491년 신성로마제국의 영주가 되었다. 1704년에는 오스트리아군이 점령하였고 1805년 오스트리아에 병합되었다. 1809∼1810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가 그후 바이에른 왕국에 귀속되었다. 중세의 건축물로는 수도원 교회와 원래 수도원장의 거성이었다가 나중에 바이에른 국왕의 하계 별장이 된 성(지금은 박물관)이 있다. 이 마을에서 케이블 철도로 연결되는 500 m 고지인 오버잘츠베르크(Obersalzberg)에는 나치스 시절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헤르만 괴링(Hermann Goering), 마르틴 보르만(Martin Bormann) 등 나치스 지도자들의 별장과 방공호, 군영, 기타 시설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히틀러의 별장이었던 베르크호프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특히 이름이 높았다. 이곳에서 히틀러는 1938년 2월 오스트리아 수상 쿠르트 폰 슈슈니크(Kurt von Schuschnigg)에게 오스트리아에 대한 독일의 지배권을 강요하였으며, 그해 9월 중순에는 영국 수상 A. 네빌 체임벌린(A. Neville Chamberlain)과 처음으로 회동하여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자기의 요구조건을 제시하였다. 이 별장은 1945년 4월 연합군의 공습에 의해 파괴되었고 1952년에는 그 폐허에 식수가 이루어졌다. 암벽 속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독수리 둥지'라는 별명을 지닌 산의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으며, 그곳에 히틀러 전용의 별실이 있었는데 지금은 찻집으로 바뀌어 있다.
관광지 안내

◆ 도큐멘트센터
히틀러의 유품들이 전시된 곳이다.
























도큐멘트센터 관광을 마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약간의 시간이 있어서 시내를 구경하였다







Isar 강




by 성환 | 2008/04/08 17:59 | 발칸반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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