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여행 (5)

2008년 3월 28일

크로아티아의 드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공화국(크로아티아어: Republika Hrvatska 레푸블리카 흐르바츠카, 문화어: 흐르바쯔까)은 동유럽에 있는 공화국이며 수도는 자그레브이다.
동쪽으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서쪽으로 아드리아 해, 북쪽으로는 슬로베니아·헝가리와 접해 있다.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지도


역사
크로아티아는 1867년부터 1918년까지는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고, 1918년부터 1990년까지는 세르비아인의 지배를 받았다. 1991년 6월 25일,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지리
크로아티아는 발칸 반도에 위치한 나라로, 서쪽은 지중해의 일부에 속해 있는 아드리아 해에 접해 있으며, 북서쪽에는 이스트리아 반도가 위치해 있다. 서해안에는 여러 섬들이 위치해 있다.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를 띄고 있는 곳이다.
주민
주민은 크로아티아인이 89.6%이다.
그 외 세르비아인이 4.5%, 보스니아인이 0.5%, 기타(우크라이나인, 이탈리아인, 독일인, 헝가리인, 집시, 루테니아인 등) 등이다.

크로아티아인의 비율은 크로아티아 분쟁이후 높아지고 있는 반면, 세르비아인의 비율은 떨어지는데 대부분이 크로아티아에서 퇴거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크로아티아인은 세르비아인과 사이가 좋지 않기로 소문이 나 있다.
언어
크로아티아어가 공용어이며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96%).
일부는 세르비아어, 헝가리어, 이탈리아어, 보스니아어, 독일어, 러시아어, 영어, 기타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1%).
크로아티아는 프랑스어 사용국 기구(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다.
종교
종교는 대부분이 가톨릭교이다(87.8%). 나머지는 세르비아 정교회가 4.4%, 이슬람교가 1.3%, 개신교와 기타가 0.3% 등이다.
위의 자료는 위키피디아에서 인용한 것임.
다음은 이번 여행을 주관한 주노여행사의 안내자료이다.
개 요

발칸 반도 중서부에 위치한 크로아티아는 북서쪽으로 슬로베니아, 북쪽으로 헝가리, 동쪽으로 유고슬라비아 연방, 남쪽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아드리아 해와 면하고 있다.
공식명칭은 크로아티아 공화국(Republic of Croatia)이다.
면적은 56, 610㎢으로 한반도의 1/4정도에 해당하며 인구 4, 774, 000으로 그중 86만 명이 자그레브에 거주하며, 도시에서 50%가 거주한다.
인종은 크로아티아인 78. 1%, 세르비아인 12. 1%, 이슬람교도 0. 9%, 헝가리인 0. 5%, 슬로베니아인 0. 5%, 기타 7. 9%로 구성된다.
수도는 자그레브로 메드베드니차 산의 경사면과 사바 강의 범람원에 걸쳐 있으며, 탁 트인 광장과 공원이 많이 있다. 이곳은 크로아티아의 문화적 중심지이며, 과학촵예술와 1669년에 설립 된 자그레브대학교가 위치한 교육도시이다. 미술관에는 여러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중세시대의 건물들이 보존되고 있다.
주요 도시는 스플리트, 리예카가 있다.
크로아티아의 경제는 농업과 가축사육에 기반을 둔다.
슬라보니아의 판노니아 평원에서는 곡물을 비록한 콩, 감자, 사탕무, 대마, 과일 등이 주요작물이며, 연안의 섬에서는 포도재배가 활발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공업이 급속으로 발달하면서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변모하였다.
또한 이스트라와 달마치야에서 어업 및 항해업이 활발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해운업과 관광업이 발달하였으며, 석유촵석탄촵보크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공업개발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주요 산업으로 식품가공촵섬유촵포도주촵천연 가스 산업 등이 주요 산업으로 차지하고 있다.
기 후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로 분리된다.
내륙부는 대륙성기후이며 해안부는 지중해성 기후로 일조량이 많고 연간 얼음이 어는 날은 대개 2일정도이다.
두브로브니크

벽돌색으로 보이는 곳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 시가지이다.



드브로브니크의 구 시가지 항공사진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남부의 아드리아해에 면한 역사적인 도시로써, 북위 42°39′, 동경 18°04′에 위치하고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네움이 바다에 접함으로써 이 지방은 크로아티아 본토와는 단절되어 있다. 하지만, 여행자는 간단한 여권 검사만으로 두 지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도시로써 두브로브니크-네레트바(Dubrovnik?Neretva) 지방의 중심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인구는 약 5만명이며 크로아티아인이 전체의 88.39% (2001년 기준)을 차지한다.
예로부터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렸다.

일찌기 베네치아 공화국의 주요 거점중 하나로 13세기부터 지중해세계의 중심도시였다. 베네치아인들이 쌓은 구시가의 성벽(Stari Grad)은 1979년 UNESCO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557년 지진으로 인해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아름다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교회, 수도원, 궁전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이 아름다운 도시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아직도 그때의 파편과 총탄자국이 곳곳에 남아있다. 당시 유럽의 많은 학자들이 이곳으로 달려와 인간방패(두브로브니크의 친구들)의 역할을 해 주지 않았다면 이 곳은 폐허만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1990년 유고 내전으로 훼손되어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위기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었지만 유네스코와 국제 사회의 지원으로 복원되었다.

돌출된 바위 지형에 두브로브니크 시(주)가 생겨난 것은 7세기의 일이었다. 전쟁등의 역사적 격정을 거치고 때론 여러 나라들과 타협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이기도 했지만 19세기에 이르기까지 크로아티아에서 유일하게 내내 값진 독립을 유지했던 지역이다. 일찌기 바다를 이용한 해양산업에 진출하여 시의 문명화가 이루어졌다.
초기 단계부터 두브로브니크의 붉은 깃발은 모든 해양을 누비는 출항선박의 돛대 위에서 휘날렸고 이 배들은 풍성한 포획물을 싣고 귀항하였다. 대내외적인 도시의 특성은 이 시기의 번영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는 강한 방위벽으로 둘러 쌓여있고 관공서와 광장, 좁은 중세거리의 주택들은 로마와 고딕시대 스타일을 띄고 있다.
많은 법률들이 시민들의 고매한 인간성을 대변해주는데 그 예로 유럽에서 처음 제정된 노예 매매 금지법(1416)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과학을 비롯, 모든 분야의 학문과 예술이 이 작은 도시에서 번영하여, 아드리아해상에 빛났다. 이곳의 학자들은 세계 여러 나라로 가서 이 지역의 높은 학문수준과 유럽 문화를 전파하였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시의 출중한 문화수준은 현대에도 이어져 매년 7월 10일부터 8월 25일까지 열리는 여름 축제는 각종 show와 이벤트로 삶의 풍요를 더해주고 있다.
두브로브니크의 관광지 안내

바다와 면해있는 흰 성벽
드브로브니크의 도시 성벽만큼 드브로브니크의 자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현한 건축물을 찾을 수 없다. 유럽 전역에 있는 종류의 건축물 중에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건물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과언이 아니다. 성벽이라고는 하지만 수백년동안 이곳에서 대포 소리가 들리지 않은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에 있던 대포중 몇개는 이미 200년전 오스트리아인인 설립한 군사 박물관에 전시되었고, 몇개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녹아버리기까지 했다. 이 튼튼하고 아름다운 성벽 덕분에 적들의 침입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드브로브니크는 전쟁을 겪은 적이 많지 않았고, 그러한 이유로 찬란한 문화와 예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드브로브니크 구시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투어는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드브로브니크를 가장 잘 둘러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프라차 거리
프라차는 구시가의 서쪽에서 동쪽 루쟈 광장가지 곧게 뻗어있는 전체길이 300 m 의 대리석으로 만든 보행자 전용 거리이다. 시가지를 가르고 있던 수로를 메우고 만든 프라차의 양쪽에는 17세기 대지진 후에 재건된 거물들과 레스토랑, 상점들이 즐비하고, 왼쪽 골목길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빨래가 펄럭이는 주택가로 이어진다. 플라카의 화렴함과 번잡스러움이 거짓말인 것처럼 조용한 골목이다. 스트라툰 대로라고도 불리는 프라차는 지금도 구시가의 중심가로 사람들의 왕래로 떠들썩하다. 몇 백 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바닥에 깔린 대리석은 많은 사람의 발길에 닳아 매끌매끌하게 광택이 난다.
스폰자 궁전
1520년에 완성된 스폰자 궁전은 후기 고딕양식와 르네상스양식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 건물로, 아케이드가 있는 주랑과 아치형 창이 특징인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곳은 왕이 살던 곳이 아니라 드브로브니크 경제의 중심으로 세관, 조폐국, 재무국, 상품 검사소, 은행 등 경제활동을 담당해 온 건물이다. 또한 드브로브니크로 들어오는 모든 무역 상인들의 무역센터이기도 했다. 무역 상인들에게 관세를 거두는 것이 목적이었다.
시계탑
견고하게 규칙적으로 쌓아 올린 시계탑은 15세기에 건설했다. 유고슬라비아와의 내전에서 파괴되었다가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되었다. 옛날부터 매 정시마다 울리고 5분 후에 한번더 울린다. 성문을 닫는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렉터 궁정
궁전이라 이름붙여진 건물들이 대체로 화려한 외형과 실내장식을 보여주는 것에 반하여 렉터 궁전은 단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크로아티아의 도시답게 두브로브니크도 여러번 분쟁과 전쟁에 휩싸였었고, 렉터 궁전도 여러번 피해를 받았다. 몇번 폭격을 받아 파괴되기도 했고, 지진으로 건물이 붕괴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15세기 중반에 두브로브니크 정부에 소속되어 있었던 나폴리 건축가 Onofrio di Giordano de la Cava에 의해 완공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1463년 폭격을 맞아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다시 복구되었다. 이곳에는 두브로브니크의 목사가 성직을 수임하기 전에 가족과 떨어져 한달간 홀로 생활하는데 사용되었던 곳이다. 국가 또는 정부적인 중차대한 업무가 있을때만 성을 떠날 수 있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항상 성내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곳은 두브로브니크 시정부 등의 의회에서 공식적인 리셉션 등의 행사를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서를 보면 현재 궁전이 있던 곳에는 1435년 폭격으로 소멸된 작은 규모의 성이 있었다고 한다.
크로아티아에 대해서 더 자세한 일반 정보를 원하면 나라 정보를 참조하라.














































젊은 여성은 현지 관광가이드이다.




























by 성환 | 2008/04/09 19:21 | 발칸반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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