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여행 (4)

2008년 3월 27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크로아티아어와 보스니아어: Bosna i Hercegovina 보스나 이 헤르세고비나, 세르비아어: Босна и Херцеговина 보스나 이 헤르체고비나, 문화어: 보스니아 헤르쩨고비나)의 동쪽 및 남동쪽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북쪽과 서쪽은 크로아티아와 접해 있으며 수도는 사라예보이다.
이 나라는 보스니아인, 크로아티아인 중심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전 영토의 51%)과 세르비아인 중심의 스르프스카 공화국(49%)으로 사실상 양분되어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도


역사
1992년 4월 5일, 구유고슬라비아연방으로부터 독립하였다. 한때 보스니아 내전으로 많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지리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에 위치한 국가로서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인접하고 있고 수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된 사라예보이다.
주민
주민은 보스니아인이 48%, 크로아티아인이 22%, 세르비아인이 40%, 기타(유대인, 터키인, 아랍인 등) 등이다.
각각의 민족은 크게 보면 남슬라브계의 근연 종족이나 정치,종교와 역사적인 전통에 의한 대립으로 각각의 민족으로 갈렸다.
보스니아인은 보스니아 이슬람교도 또는 보스니악이라고도 한다.
언어
언어는 공용어가 보스니아어, 크로아티아어, 세르비아어이다.
아랍인들은 아랍어를 사용한다.
남슬라브어에 속하는 이들 언어는 언어학적으로는 동일언어의 방언들이나, 현재는 정치적 대립에 의하여, 각각 별개의 언어로 인식되고 있다.
보스니아어, 크로아티아어는 로마자, 세르비아어는 로마자, 키릴문자(우세)를 모두 사용한다.
보스니아인은 로마자 사용 전에 종교적인 이유에서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아라비아문자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 언어는 정치적 상호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상호 배타적인 방향으로 급속하게 분화하는 중이다.
종교
종교는 보스니아인과 터키인, 아랍인이 이슬람교, 크로아티아인이 로마 가톨릭와 개신교, 세르비아인이 세르비아 정교회를 신봉한다.
보스니아

보스니아(보스니아어: Bosna 보스나, 세르비아어: Босна 보스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80%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사라예보

사라예보(Sarajevo, 세르비아어: Сараjево, 문화어: 싸라예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이다. 인구는 1991년의 조사에 따르면 429, 672 명이며 현재는 약 40만 명으로 추산된다.
발칸 반도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1461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세워진 이래로 긴 역사를 자랑한다.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암살되어 제1차 세계 대전의 시발점이 된 사라예보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1984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이며,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에 포위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사라예보 국제 공항이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1531년 처음 대학교가 세워진 교육의 중심지이다.
종전 후 안정을 되찾으면서 관광지로도 다시 부상하고 있다.
위의 자료는 위키피디아에서 인용한 것임.
다음은 이번 여행을 주관한 주노여행사의 안내자료이다.
개 요
6~7세기에 슬라브인이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12세기 중엽부터 헝가리의 지배를 받아오다 1463년 터키 제국의 속주로 전락하였다.
이후 약 400년 동안 터키의 지배로 대부분 이슬람 문화에 동화되었고, 구 유고 연방 공화국들 중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가장 많은 무슬림이 거주하고 있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1875~1876년에는 보스니아와 불가리아에서 봉기가 일어나는 등 대(大)세르비아주의의 민족운동도 격화되었으며, 1878년에 터키가 러시아에 패하면서 베를린 회의의 결정에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넘어갔다.
오스트리아가 1908년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해 버리자, 민족자각운동이 더욱 거세지게 된다.
1914년 6월 28일 코소보(Kosovo) 전투 제525회 기념일날 합스부르크 제국의 페르디난트(Archduke Franz Ferdinand) 황태자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당함으로써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게 되고, 세계대전으로 이어진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왕정주의를 부르짖는 세르비아에, 1941년에는 크로아티아에 합병되었다.
또한 2차 세계 대전중에는 빨치산의 본거지였으며, 종전 후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이 탄생하면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1946년 연방의 일원인 하나의 공화국으로 승인받게 되었다.
92년 유고슬라비아의 해체와 더불어 독립하기 이전까지 보스니아 내전을 겪는 등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우리나라와는 95년 12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밀· 옥수수· 감자· 담배 등의 농업이 활발하고 석탄· 철· 보크사이트· 암염 등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
보스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는 196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보 안드리치(Ivo Andri :1892~ 975)이다. 그의 작품인 『트라브니크(Travnik) 연대기』와 『드리나(Drina) 강의 다리』는 모두 2차 세계 대전중에 쓰여졌으며 이슬람과 정교 문화의 혼합상을 보여 주고 있다.
기 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체가 강한 지진대에 속한다.
이 지역의 전형적인 기후는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다. 사라예보의 1월 평균 기온은 섭씨1도이고 7월의 평균기온은 섭씨21도이다.
봄철은(4월, 5월) 고지대에서는 여전히 눈이 덮여있지만 풍부하고 다채로운 동식물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사라예보
전쟁 전의 사라예보는 모스크와 시장 아름다운 전경을 가진 터키식 바자르가 있는 풍부한 역사의 장으로 유럽에서 가장 동양적인 도시였다.
도시의 강가는 여전히 1914년 Archduke Francis Ferdinand 여기에서 삶을 마치는 그 운명적인 날 이래로 크게 변하지 않고 유지되어 왔다.
70 년이 지난 후에 사라예보가 다시 1984년 동계 올림픽의 개최지로 주목받기 시작할때, 당신은 그 경쟁무대에 설수 있었을 것이다.
100 년동안 사라예보는 이슬람과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터키인과 유대인과 또 다른 이민족이 평화적으로 공존했지만, 관용의 전통은 세르비아인의 대포에 의해서 파편속에 부서졌다.
최근의 전쟁동안 10000 명의 사람이 죽었고, 5000 명이 부상당했다. 3년의 잔인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사라예보는 다시 안정상태에 도달한다.
트램이 움직이고 많은 카페와 호텔들이 다시 문을 열고, 여행객들이 조금씩 도시를 채우기 시작했다.
최초의 방문객들은 인류의 종말과도 같은 전쟁의 그 엄청난 폐해를 보여주는 장소를 최초로 보고자 하는 '전쟁그룹'들이었다.


사라예보 중심부

관광지 안내
◆ 바슈카르지아
사라예보 관과의 핵심이 되는 곳으로 유럽 문화와 이슬람문화가 공존하는 사라예보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바슈카르지아광장에 서있는 세빌리는 1891년에 건축된 샘으로 구시가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비둘기가 가득한 세빌리의 모습은 사라예보 엽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지금도 맑은 물을 공급하고 있어서 많은 이들이 세빌리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식수로 이용하고 있으며, 이 샘물을 마시면 다시 사라예보를 찾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 가지 후스레프 베그 모스크
사라예보에서 가장 중요한 이슬람 건축물로 1521~1541년 보스니아를 통치하던 가스 후스레프 베그의 지시로 1530년에 페르시아의 건축가가 지었다.
웅장하면서도 율동감 있게 구성된 26 m의 초록색 돔이 매우 인상적이며, 안으로 들어가면 발을 씻는곳, 샘, 초등학교, 기도실 등이 있고, 왼쪽에는 16세기에 만든 정교한 묘지가 있다.
이처럼 이곳은 이슬람 교도들에게 필요한 사회기능을 골고구 갖춘 안식처와도 같은 곳이다.
무슬린들의 정신적인 안식처였던 모스크는 내전 중 가장 명백한 표적의 대상이었고, 많은 손상을 입었지만 사우디아리비아 등 주변국가 이슬람 국가의 도움으로 1996년에 완벽하게 복구되었다.
◆ 올드 세르비아 정교회
1539년에 세운 세르비아 정교회를 대표하는 성스러운 장소이다. 소박한 외관을 가지고 있고, 내부의 제단은 정교회 특유의 화려함으로 장식되어 있다.
내전 중 지붕이 파괴되는 등 큰피해를 입었지만 현재는 복구된 상태이다.
사라예보에서 제일 많은 642 개의 성화상을 소장하고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대해서 더 자세한 일반 정보를 원하면 나라 정보를 참조하라.












샘물이 신선하였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페르디난트(Archduke Franz Ferdinand) 황태자가 암살된 곳 근처에 있는 기념 박물관


역사적으로 유명한 다리





조성환의 홈페이지 : http://www.kma18.com

by 성환 | 2008/04/09 21:19 | 발칸반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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