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여행 (3)

2008년 3월 26일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세르비아 공화국(세르비아어: Република Србиjа 레푸블리카 스르비야, 문화어: 쓰르비아)은 유럽 동남부 발칸 반도 중앙에 위치한 공화국이며 수도는 베오그라드이다.


세르비아 지도


세르비아는 북쪽으로 헝가리, 동쪽으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남쪽으로 마케도니아 공화국과 알바니아, 서쪽으로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국경을 접한다.

몬테네그로와 함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연방을 구성하는 공화국이었으나 2006년 6월 5일, 두 나라가 분리 독립하여 연방은 해체되었다.
역사
9세기에 최초의 세르비아 왕국이 세워졌다. 14세기 중엽에는 스테판 두샨이 발칸 반도의 대부분을 석권하는 등 세력을 떨쳤으나 14세기 말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19세기, 세르비아인들은 집요한 독립 전쟁 끝에 1881년에 독립을 달성하였다(세르비아 왕국).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사건 당시 이 나라 출신의 가브리엘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태자를 암살함에 따라 한 달 후에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였다. 그 당시 작은 나라였던 몬테네그로 왕국은 세르비아를 도와주는 동생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집요한 침략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는 계속 승리하였다. 그러나 1916년 2월엔 세르비아 또한 점령되었다(몬테네그로는 항복). 1918년이 되어서야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빼앗긴 땅을 수복하게 되었으며 1920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1941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나치에 협력한 크로아티아인에 의해 세르비아인에 대한 학살이 이루어졌다. 소련군의 지원 아래에 1943년에 영토를 수복, 이 땅에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졌다(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티토사후 동구의 민주화혁명 및 민족주의의 대두에 따라 1992년, 슬로베니아 / 크로아티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차례로 유고슬라비아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연방의 중추적 국가였던 세르비아가 이에 반발하여, 특히 인접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인이 많이 살고 잇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전쟁은 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분쟁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족 정화 등 많은 반인륜적 잔혹행위가 저질러졌고, 나토와 미국의 군사개입이 있었다.
2003년 2월에는 새 유고 연방마저 해체하여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되었으나, 2006년 5월 몬테네그로가 분리 독립 투표에서 독립 찬성률이 55.4%로 독립이 가결되었다. 같은 해 6월 4일에는 몬테네그로 의회가 독립을 공식 선언함으로써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해체, 세르비아 공화국과 몬테네그로 공화국으로 분리되었다. 한편, 세르비아는 2006년부터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 되었다. 2007년 1월 21일에는 코소보의 운명을 결정할 총선이 시작되었다. 이 총선에서 세르비아 급진당이 승리하였으나 과반수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2008년 2월 17일 코소보는 세르비아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하였다.
지리
세르비아는 발칸 반도와 파노니안 평원에 있다. 남동부 유럽에 있으며 다뉴브 강이 북쪽 지방을 흘러간다.

동쪽 국경에는 카르파티아 산맥이 있고 벨리카 모리카라고 하는 500km 길이의 강이 흐른다. 남동부 지방에는 발칸 산맥이 로도프 산맥과 맞닿아 있고 그리스와 마주한다. 세르비아의 영토 4분의 1 이상이 숲으로 돼 있다.
행정 구역
세르비아는 코소보 독립선언 전까지 헝가리인이 많이 사는 보이보디나 자치주와 알바니아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코소보 자치주를 포함했었다. 코소보는 코소보 전쟁 이후 현재 국제연합 관할하에 있어, 사실상 세르비아의 주권이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코소보는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가들의 지원 하에 2008년 2월 17일 독립을 선언 하게 되었는데, 세르비아와 러시아 등의 국가들이 아직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이 흘러야 코소보의 운명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민
남 슬라브인의 분파인 세르비아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세르비아인 외에도 여러 소수 민족들이 거주하며 헝가리인, 터키인, 크로아티아인, 보스니아인, 불가리아인, 알바니아인, 마케도니아인, 아랍인, 기타 소수 민족도 거주하고 있다. 몬테네그로인은 구 유고슬라비아의 구성민족 중 세르비아인과 가장 가까웠으나, 독립과 더불어 독자적인 민족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언어
세르비아어가 공용어이다. 키릴문자와 로마자 모두 사용되나, 키릴문자의 사용이 보다 보편적이다. 크로아티아어나 보스니아어와는 유고 연방 시절에는 방언적 차이에 불과했으나, 현재 정치적인 대립을 배경으로 급속히 분화하는 중이다. 2006년 10월 28일과 29일에 실시한 국민투표로 확정한 헌법 10조 1항에 "세르비아공화국에서는 세르비아어와 키릴문자가 공식적으로 사용된다."라고 규정했다. 알바니아계 주민이 90%를 넘는 코소보에서는 알바니아어의 북부 방언인 게그 방언이 주로 사용된다. 보이보디나 자치주에서는 헝가리어도 사용된다.

세르비아는 2006년 9월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프랑코포니 정상회담 결과 참관국 자격을 획득하였으나, 프랑스어의 사용은 제한적이다. 영어나 소수 민족어도 사용된다.
위의 자료는 위키피디아에서 인용한 것임.
다음은 이번 여행을 주관한 주노여행사의 안내자료이다.
개요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구성국 가운데 하나. 정식명칭은 세르비아공화국. 세르비아인은 7세기초 이 지방에 정착하였으며 11세기까지 여러 족장의 항쟁이 계속되었다. 한때 불가리아의 지배 아래 있었으나 대체로 비잔틴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이후 비잔틴 제국의 내분을 틈타 S. 네마냐가 일으킨 네마냐왕조에 의해 약 200년간 지배를 받았으며 14세기 전반 두샨왕 때 최전성기를 맞아 발칸반도 남부 거의 전 지역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1389년 코소보 싸움을 계기로 400년 이상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19세기초 오스만제국의 지배에 항거하는 두 차례에 걸친 봉기로 1830년에 완전한 자치공국이 되었으며 1878년 베를린조약에 의해 독립되었다. 이후 20세기에 들어와 오스트리아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고 전쟁 후 1918년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 왕국의 일부가 되었는데 이 왕국은 1929년 유고슬라비아로 공식명칭을 정하였다. 1946년 유고슬라비아공화국이 되었으며 1991년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마케도니아가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하자 1992년 4월 몬테네그로와 함께 신유고슬라비아연방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2003년 두 공화국은 신유고연방을 해체하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두 공화국이 대등한 관계를 기본으로 하여 대통령과 일원제의회(몬테네그로 35석, 세르비아 91석)를 두고 외교·국방을 담당할 합동행정기구로만 연결되는 느슨한 형태의 국가연합체재를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 세르비아의 평원지대는 손꼽히는 곡창지대로 옥수수·소맥·해바라기 재배가 활발하다. 구리·아연·안티몬·금·은 등의 광물도 풍부하며 공작기계·자동차·전기기구·화학공업이 활발하다.
자연과 기후
온화한 대륙성 기후 지역이다. 1월 평균기온은 도나우 평원의 0℃에서 산악지대의 -3℃에 이르며, 7월은 17∼21℃ 정도이다. 연평균강수량은 북부평원지대의 838 mm에서 몬테네그로 산악지방의 2, 540 mm에 이른다. 수도인 베오그라드의 기후는 대륙성 기후에 속하며, 사계절이 바뀌는 것은 한국과 유사한 편이다. 한국보다 여름이 더욱 덥고, 겨울도 더욱 춥다. 그러나 아드리아해 연안은 가장 일조량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베오그라드
다뉴브강과 사바강의 합류점에 위치한 베오그라드는 크로아티아 어로 하얀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로마 제국 당시 이 지역을 점령한 로마인들이 흰 벽돌로 성벽을 둘러 쌓았기 때문이다. 늘 발칸반도의 도시들은 내전으로 폐허로 남아있을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고풍스러움과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환경이 남아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인구 100만의 도시로 사바나강을 중심으로 도시 남부에는 노비베오그라드가 형성되어 행정기관과 주택가들이 몰려 있다. 12세기경 주변의 국가들 사이에서 지배권을 다투었을 정도로 교통과 군사적 요지인 베오그라드는 역사적 환경에 따라 지배권에 따라 늘 지배권이 바뀌면서 안정된 역사를 누려보지 못했다. 예전에는 유고연방의 수도였고 현재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수도로서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이 들어와 있으며 종합대학과 300여개 가까이의 학교들, 과학예술 아카데미와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어 문화의 중심지로도 발전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잔해가 남아있는듯 하지만, 근교에는 누드수영장이 있기도 하며 도시는 조형예술을 고려한 건축물등을 통하여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베오그라드 중심부


관광지 안내

◆ 칼레메그단 요세
도나우강과 사바강이 합류하는 고지대에 넓게 자리한 견고한 요새로 지금은 공원으로 변하여 시민들의 훌륭한 휴식처가 되어 있다. 이름의 기원은 터키어로 ‘칼레’는 언덕, ‘메그단’은 전투를 의미한다. 3세기 경 켈트족이 처음 이곳에 요새를 세운 이후 로마, 슬라브, 오스만 투르크, 합스부르크 등의 지배를 거치면서 성벽에는 여러 가지 흔적이 남아 있다. 공원내에 있는 오래된 성곽은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 미하일로 왕의 거리
공화국 광장부터 칼레메그단까지 뻗어 있는 보행자 전용도로로 베오그라드 최고의 번화가이다. 거리에는 수많은 유럽의 브랜드 샵, 쇼핑몰,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 등이 들어서 있다. 칼레메그단과 구시가를 연결할 목적으로 1867년에 건설된 거리로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세르비아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곳으로 패셔너블한 베오그라드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베오그다드의 젊은이들은 발칸 반도의 여러나라 중 가장 패션에 민감하기로 유명하다. 노천 카페의 테이블 마다 쇼핑을 즐기러 나온 이들로 가득하고, 산책을 즐기는 관광객들로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 스카라디야 거리
공화국 광장의 동쪽편에 있는 스카다릴리야지역의 스카라디야거리는 베오그라드의 몽마르뜨라 불리는 보헤미안들의 거리이다. 오스만 투르크 시대에 깔아 놓은 자갈길의 양쪽에는 화랑, 술집, 레스토랑 등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여름철에는 아침까지 밤새도록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예부터 많은 예술가들의 주거지로 한때는 보헤미안 라이프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라이브 음악을 하는 곳이 많이 있어서, 아픔이 많았던 세르비아 역사를 이야기하는 듯한 애수에 찬 멜로디를 감상할 수 있다.
◆ 공화국 광장
베오그라드 구시가의 중심이 되는 광장으로 1945년 11월 29일의 공화국에 공포를 기념하여 ‘공화국광장’이라 명명되었다. 중앙에는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의 기마상이 서있다. 그는 오스만투르크의 지배에서 이도시를 해방시킨 세르비아의 왕으로 오랜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가 끝난 1867년, 베오그라드의 수도를 옮긴 세르비아의 존경받는 영웅이다. 광장 주변에는 국립박물관, 국립극장이 있고, 카페, 레스토랑, 영화관 등이 줄지어있다.
세르비아에 대해서 더 자세한 일반 정보를 원하면 나라 정보를 참조하라.




우리가 잔 Hotel Palace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광장에 서있는 동상인데 호텔직원은 본 적도 없는 듯 누구인지 모른다고 답하였다.





◆ 군사박물관
외국인 관광객들이 반드시 둘러보는 곳이다. 또 칼레메그단 공원은 도심지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베오그라드 시민들이 가장 즐겨찾는 공원이다.
공원에 들어가려면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보행인들만을 위한 크네즈 미하일로바 거리를 지나 윗 도시, 아랫 도시 그리고 칼레메그단의 세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이 모든 지역을 포함하여 현재는 칼레메그단이라고 통칭하고 있다. 일명 ‘베오그라드 요새’라고도 한다.
칼레메그단 공원은 베오그라드의 가장 오래된 역사적 유적지이며 그리스-로마시대와 중세시절에는 칼레메그단을 중심으로 마을이 발전하였고, 오늘날의 베오그라드는 이 칼레메그단을 그 모체로 하고 있다.
이 공원은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흔적을 오늘날에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플라비예의 제4군단이 주둔할 때의 로마군 진영과 아나스타시예 황제(510년)와 유스티니얀 황제(535년) 시절의 이중 요새의 흔적이 남아 있다.
중세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아직까지 잘 보존된 유적으로는 2개의 반원형 탑모양을 갖춘 ‘진단의 대문(진단 카피야)’와 15세기에 건설된 사각형 모양의 ‘전제군주의 대문(데스포토바 카피야)’가 있다. 또한 오스만-터키시절과 합스부르그가 시절의 수많은 유적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발굴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윗 도시에는 제2차 대전의 승리를 기리는 커다란 기념탑이 위치하고 있는데, ‘승리자의 탑(스포메니크 포베드니카)’이라 부른다. 이 승리자의 탑이 한쪽 귀퉁이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베오그라드 시민들의 보수성에 기인한다.
칼레메그단 공원의 중앙에는 군사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이 군사박물관은 고대시대로부터 오늘날까지의 다양한 병기와 군사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세르비아의 영토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천되었나를 보여 주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써 활용되고 있다. 특히 대터키 항전의 역사, 제1차 대전 및 2차 대전에서의 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잘 진열해 놓고 있다.
공원의 입구쪽에서 약 20 m쯤 떨어진 지역에는 ‘투쟁의 분수(폰타나 보르바)’가 위치하고 있는데 분수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 벤치에서는 주로 퇴직한 연금생활자들이 서양장기를 두며 그들의 여생을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분수 뒤쪽에는 제1차 대전에서 프랑스가 보여준 군사협력과 우정에 감사하여 1930년도에 세운 ‘프랑스에 대한 감사 기념탑’이 있으며 해마다 이를 기념하는 식을 거행한다.


칼레메그단 공원 중앙에 있는 이곳에는 누구(이름을 들었으나 기억나지 않는다)의 묘이다.



다뉴브강과 사바강의 합류점


승리자의 탑(스포메니크 포베드니카)
노출된 남성의 심볼 때문에 강을 보고 있어서 멀리서는 잘 않보이게 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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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환 | 2008/04/09 21:30 | 발칸반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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